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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제]69.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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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10월 4일
  • 6분 분량

이석민X전원우X김민규

69. 이웃

***

"원우, 나 출근해요."

출근하는 석민은 아침밥을 챙기곤 다시 잠에 빠져든 원우의 귀에 달콤하게 속삭였다. 석민과 원우의 동거는 이제 5년차로 접어들고 있었다. 전근이 잦은 석민에 원우는 직장을 그만두고 석민의 내조를 도맡았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석민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고 다시 잠에 빠져드는게 그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왠지 모르게 다시 석민의 출근한다는 말에 잠이 확 깨버려 간만에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그를 껴안고 뽀뽀까지 해준 원우였다.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 석민의 옆에 붙어 자투리 시간을 담소로 때우던 중 옆집의 문이 열렸다. 석민과 원우를 보고 꾸벅 인사를 하는 남학생에 웃으며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흘긋 본 남학생의 니트조끼엔 '김민규'란 이름이 담긴 명찰이 정갈하게 박혀있었다.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석민과 민규가 올라탔다. 석민의 환한 미소가 가린 원우를 보는 민규의 반짝이는 눈은 전쟁을 알리는 시초였을까.

*

석민의 해외 출장이 잡혔다. 전근보다 많이 갔던 해외출장이라 원우는 더이상 석민이 떠난 날 방에 웅크려 훌쩍거리는 일이 없었다. 물론 석민은 장난으로 사랑이 식었다, 너무하다며 우는 시늉을 했었지만. 무역회사에서 꽤나 높은 직급을 달고 있는 석민에겐 당연한 일이었고, 또한 아주 중요한 기회였다. 원우도 그것을 알기에 가지 말라 떼를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사온지 얼마 안 된 원우인지라 조금 외로움을 느끼는 것인지 옆집 학생인 민규와 친해질까라며 짐을 조금씩 챙겨두던 석민의 뒤에서 물었다. 석민은 불안하지만 그래도 외로움을 잘 타는 원우를 알기에 '그러면 더 좋지 않겠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민의 불안함은 진심이었다. 민규를 처음 본 그날, 엘레베이터에서 원우를 보던 그의 눈빛을 석민을 잊을 수 없었다. 먹잇감을 노리는 사자의 눈빛. 그것이 원우를 향한 것이 아니기만을 빌고 빌던 석민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 어? 아니, 더 뭐 챙길거 없나 해서."

"아직 며칠 남았는데 벌써 다 싸놓게? 석민 부인 서럽다."

"어이구, 너 두고 가는 내 마음은 몰라주고?"

위험하다. 이렇게 예쁜 원우인데. 누구에게 빼앗길 수 없지. 원우를 보던 민규의 눈빛을 떠올리며 석민은 픽 웃었다. 네가 아무리 그래도 원우가 안길 수 있는 품은 저의 품이라 자만하며 원우를 끌어안았다. '아저씨, 불이나 끄고 오세요.'하며 볼에 쪽 뽀뽀하던 원우에 석민은 모든 생각을 다 잊고 실실 웃으며 스위치를 눌러 불을 껐다. 원우와 석민의 방엔 불이 꺼졌지만 그들 사이엔 사랑이라는 뜨거운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딩동-'

석민이 떠나고 원우는 그동안 밀렸던 잡지를 보거나 드라마를 챙겨보았다. 저 스스로도 아줌마가 다 됐다는 생각에 풉 웃으며 그동안 보던 드라마의 다음 편을 결제하려는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하고 문을 열자 택배 배달원이 서있었다.

"혹시 옆집 택배 좀 맡아 주실 수 있으세요?"

"네?"

"아뇨 옆집 학생이 경비실엔 절대 맡기지 말아달라고 해서요"

"아아, 네. 그럼 제가 맡아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그럼 잘 전해주세요."

원우는 아무 생각 없이 쇼파 옆에 놓아두고 택배가 자신의 집에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포스트잇을 작성했다.

택배 우리집에 있어요. 가지러 와요^^

-옆집 원우형-

쇼파 앞 낮은 테이블에 앉아 포스트잇을 작성하던 원우는 형이라는 호칭에 피식 웃었다. 못해도 10살은 더 차이날텐데. 옆집 문 앞에 붙여두고는 다시 드라마를 시청했다. 바보같은 민규는 운송장 번호가 적힌 종이에 '옆집에 맡겨주세요'라는 말이 써있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물론 더 바보 같은 원우는 그 종이를 확인할 생각도 없었지만.

*

또 다시 울리는 초인종에 원우는 몸을 일으켰다. 저도 모르게 잠에 들었었나보다. 눈을 부비며 문을 여니 옆집의 그 민규라는 학생이었다. '어서와요.' 하며 웃어주니 쭈볏쭈볏 서있다가 현관으로 한발자국 발을 들였다. 본래의 원우 성격이라면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택배를 안겨주고 보냈을테지만 이번엔 달랐다. 석민이 없는 동안 민규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원우는 '아!' 하는 소리와 민규에게 거실에 앉으라며 냉장고로 바쁘게 걸었다.

"민규학생, 이거 마셔요!"

해맑게 웃으며 원우가 건넨건 오렌지 주스였다. 예쁜 컵에 빨대까지 원우가 세심한 것까지 신경을 썼다는 것이 보였다. '감사합니다.'하고 컵을 받아든 민규는 헤실헤실 웃으며 저를 보는 원우에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할지 몰랐다. 원우가 민규와 친해지고 싶은 것처럼 민규도 원우와 친해지고 싶어했다. 물론 둘의 목적은 달랐지만. 민규는 아이처럼 조잘대는 원우에 시간을 더 끌고 싶어 주스를 깨작깨작 마셨다. 원우도 석민 이외의 사람과 이렇게 오래 떠드는게 오랜만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며 민규와 시간을 보냈다.

*

"석민, 나 오늘 민규학생이랑 꽤 친해진 것 같아."

'정말? 다행이네. 외로워해서 걱정했는데.'

"나 혼자 떠들긴했는데 민규 학생도 되게 좋은 애 같더라."

'그래도 너무 친하게 지내지는 마. 네 남편 질투한다?'

"얼씨구, 친해질만하면 이사갈텐데 뭐."

틀린 말은 아니라 석민은 그저 바보처럼 허허 웃고 말았다. 그나저나 원우가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네. 라고 생각한 석민은 외국지사의 상사가 부르자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마지막에 '사랑해'라는 인사는 빼먹지 않고.

***

휴일이 되자 원우는 저녁식사에 민규를 초대했다. 민규도 타지에서 혼자 상경해 집을 얻어 학교를 다닌 는 것이라고 했다. 노래가 하고 싶어 예고에 다닌다고 했다. 이것저것 민규에 대해 알고나니 민규와 한 층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저녁을 먹다보니 원우는 술이 고팠다. 당황한 민규에게 어른이 주는 건 괜찮다며 술을 권했다, 술에 약한 원우는 한 병을 거의 비우고 식탁 위로 쓰러졌다. 민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늘이 날인가 싶어 어제까지 열심히 본 직박구리 폴더 속 야한 동영상에 속으로 절을 올렸다. 어깨를 흔들어 깨워도 원우는 일어나지 않았다.

"형, 열 셀 동안 안 일어나면 형 진짜 잡아 먹어요."

"..."

"하나."

"..."

"... 열. 잘 먹겠습니다."

원우를 안아들어 침대로 옮겼다. 원우의 향과 아침에 잠깐씩 봤던 석민이라는 남자의 향이 섞여 민규의 코를 간질였다. 원우가 입고 있던 하얀 티를 걷어올리자 티만큼 뽀얀 속살이 드러났다. 술을 마셔 얼굴은 붉고 군데 군데 보이는 석민이 떠나기 전 남긴 흔적들이 사라져 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원우의 몸은 창백 그 자체였다. 민규는 애가 탔다. 석민이라는 자가 남긴 흔적을 지우고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엔 원우와 저밖에 없다는 것을 석민에게 알리고 싶었다. 질투에 차 절망하는 석민의 표정이 떠올랐다. 석민이 돌아오는 나흘 후면 그 모습을 볼 수 있으려나.

*

석민의 귀국이 당겨졌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원우와 민규는 민규만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석민은 기쁜 듯 원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민규의 속박에 원우는 보고 싶은 석민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원우의 몸은 민규가 원하는대로 석민의 흔적은 없어진지 오래고 민규의 흔적만이 남았다. 원우는 눈을 뜰 때마다 이것이 꿈이길 빌고 빌었다. 석민이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했을 때 선을 그었어야 했나. 아니면 술이 고팠었도 석민의 귀국을 축하하며 와인을 땄어야 했나. 후회가 꼬리를 물고 물어 결론을 찾아가고 있자 민규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내일은 석민이 돌아 오는 날이다. 공항에 마중을 나가야하는데. 지금 이 꼴을 보면 석민은 원우에게 뭐라고 할까. 더럽다고 할까, 혼자 두고 출장에 가 미안하다고 할까. 깊게 생각할 즈음 민규는 원우를 묶어두었던 손목을 풀고 제 목에 감게 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

"말 안 할 거에요?"

"..."

원우는 민규가 괴롭힐 때 외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원우의 입에서 나오는 석민의 이름 외에는 배고프다, 졸리다, 그만하고 싶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고 다리는 묶여있지 않았기에 화장실 정도는 알아서 해결했다. 그러나 왜 도망은 가지 않았을까. 사실 원우는 무서웠던 것이다. 술에서 깨어 민규에 의해 몸이 정처없이 흔들리고 있을 때 강한 고통과 쾌감을 함께 느꼈던 원우는 자신이 석민 외에 다른 남자에게 안겼다는 사실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원우는 석민이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랐다. 이 끝이 정해져 있는 지옥과도 같은 민규의 품에서. 민규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원우가 못마땅해 교복을 벗어내리곤 원우의 위로 올라탔다. '민규'라는 지옥에서 원우에게 가해지는 벌이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흐으, 석, 민아... 이석, 미인..."

"... 입 안 다물래요?"

"으응, 아! 석민아!"

"씨발, 진짜!"

순식간이었다. 민규는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원우의 뺨을 내려쳤다. 붉게 원우의 뺨이 부어오르고 원우의 입에서는 고통에 찬 신음과 쾌락에 찬 신음이 섞여 '끄윽, 윽...' 하는 요상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같은 시간 석민은 저를 마중나오지 않은 원우에 의아함을 가졌다. 평소같으면 저 멀리에 손을 흔들며 저를 맞아줄 원우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여기저기 둘러보아도 원우의 소매 끝자락조차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이 들어 얼른 택시에 올라탔다. 그리고 다짐했다. 원우를 보면 제 품에 꼭 안아주겠다고, 다음 출장엔 꼭 함께 하자 속삭여 주겠다고.

*

원우의 나무가지처럼 마른 몸은 민규에 의해 속절없이 흔들렸다. 민규는 미래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제 본능에 충실했던 남고생이었을뿐 원우를 가지면 모든게 끝일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 번 가지니 전원우라는 사람에 대해 더욱 목말라했다. 품에 안았지만 더욱 안고 싶었다. 제 손에 쥐었지만 더욱 갖고 싶었다. 민규에게 원우란 그런 아이러니한 존재였다.

'툭'

민규는 갑자기 들린 소리에 뒤를 돌았다. 석민의 다짐은 이미 가루가 되어 날아가버린지 오래였다. 껴안아주고 속삭여주고 싶던 원우는 다른 남자의 밑에서, 그것도 불안해했던. 원우가 그렇게 자랑을 해왔던 민규의 아래에서 저만이 탐하던 몸을 내주는 것을 본 석민은 이성을 잃은지 오래였다. 석민은 민규에게 발길질을 했다. 원우는 이미 정신을 잃었고 민규도 석민의 발길질을 받아내다 쓰러져버렸다. 기절해버린 민규는 그토록 보고싶어하던 석민의 절망에 가득찬 표정을 보지 못했다.그렇게 기절해버리고 눈을 뜨니 시간은 2시간 정도 지나있었고 민규는 거의 나체인 채로 가방과 신발과 함께 아파트 복도에 덩그라니 방치 돼있었다. 민규는 원우와 석민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까까지 군림했던 그 집의 문은 더이상 열리지 않았다. 민규는 충격과 창피함과 미안함이 섞여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죽어도 사과는 하고 죽겠다고 한 다짐은 2주 정도가 지난 어느날 열린 그 집의 문의 안. 이미 가구가 다 빠져 있고 휑한 민규의 마음을 보여주듯 비어있는 거실로 인해 무너졌다. 이미 떠나간 그를 그리워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우스운 일인가는 민규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가을은 민규도, 원우도, 석민도 상처가 짓물러 흉터만을 남기고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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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홈임니다!

홈 개설하고도 첫 글이고 100제의 첫 글이었는데

어떻게 보셨나 모르겠어요ㅠㅠ

부족한 글솜씨에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 팍팍 진도 빼고 1년 안에 100제 얼른 끝마치겠습니다

중간중간 생각나는 소재로 글 올릴테니 기대해주세요ㅠㅠ♡

마지막으로 원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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